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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책: 《사랑하게 된 거야, 너를 : 안내견 강산이가 내게 남긴 것들》, 김성은, 청과수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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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함께 머무는 시간] 마음독립서점의 김태임 마르타가 전하는 한 권의 책을 만나 보세요!
은총이라는 이름
은총이, 성모송을 시작하려는 게 아니다. 그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편이 아릿하다. 27년 전, 검정과 회색 털이 멋진 슈나우저를 반려견으로 맞이했을 때 나는 그 아이에게 외모만큼이나 예쁘고 멋진 이름을 지어 주고 싶었다. 후추, 페퍼, 초코……. 설레는 마음으로 고민했지만 큰 난관이 하나 있었으니, 엄마가 반려견 입양에 결사반대하셨던 것.
반려견을 집에 데려오던 날, 나는 그 아이를 가슴에 꼬옥 안고는 현관문부터 엄마 눈치를 살피며 몰래 내 방으로 들어갔다. 세 딸이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고 있으니, 반대했던 엄마였어도 몹시 궁금했을 터였다. 방문 틈 사이로 빼꼼 얼굴을 밀고 눈을 흘기시던 엄마는 ‘은총이라고 불러라~!’ 하고 말씀하셨다.
은총이라니! 믿음도 소망도 사랑도 아닌 은총이라니. 냉담 중이던 나로선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이름이었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쫓겨나고 싶지 않으면 잠자코 은총이라 부를 수밖에. 그렇게 우리 가족이 된 ‘은총이’는 그 커다란 이름만큼이나 우리 가정에 은총을 가득히 남겨주고 떠났다.
사랑하게 된 순간
은총이 이름 덕분이었는지, 나는 정말 그로부터 얼마 후 냉담을 풀고 성당에 나가게 되었다. 엄마가 가라는 명동 다락방 기도 모임도 가고. 하루에도 열두 번, 온 가족이 번갈아 가며 ‘은총아, 은총아’ 부르니 그야말로 내 귀로 은총이 가득 흘러 들어온 셈이었다. 끊임없이 묵주기도를 하는 것 같은 효과랄까. 엄마는 처음부터 이럴 심산으로 이름을 지어 준 것일까.
은총이가 떠난 지도 벌써 십수 년이 지났다. 얼마 전 이 에세이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많이 잊힌 상태였는데 말이다.

《사랑하게 된 거야, 너를》
앞표지부터 심상치 않았다. 강아지와 함께하는 이를 그린 따뜻한 일러스트, 가지런히 찍혀진 점자. 무엇보다 제목이 그랬다. ‘사랑한 거야’도 ‘사랑했었어’도 아닌 ‘사랑하게 된 거야.’ 마치 내가 하려고 해서 그리된 것이 아니라, 어떤 이끌림에 의한 사랑 고백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을 떠올려 보면, 그 감정은 선택이 아닌 필연처럼 다가오지 않던가. 7년을 함께한 안내견 강산이에게 보내는 작가의 편지 속으로, 나는 마땅히 그래야 했던 것처럼 빨려 들어갔다.
소리 없는 대화
작가는 안내견 강산이를 떠올리며 조용히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지방 취업과 동시에 홀로서기를 앞두고 안내견 학교에서 처음 만난 강산이. 나란히 걷고 숨 쉬며, 두 존재는 서로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말없이도 대화가 통하는 사이.
책을 읽으며 몇 번을 울컥했다. 시각 장애인으로서의 어려움과 상처, 아픔이 담긴 일상에는 언제나 유머와 작가 특유의 밝은 빛, 그리고 강산이의 조력이 함께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 그날 있었던 일들을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다정하고 따뜻한 문장들이 나를 20대로, 은총이와 함께했던 때로 데려가 주었다.
애도의 터널을 지나 한참을 달려와 이제는 흐릿해진 은총이와의 시간이 다시금 살아났다. 그 아이의 깊은 눈과 말없이도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 내가 너를 안다는 감각. 그 눈을 바라볼 때면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는 깊은 공감과 위로가 느껴졌다.
은총이 말고는 그 누구의 눈도 그토록 오래, 편안하게 바라본 적이 없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에서 자꾸만 미끄러지고 좌절하던 때였다. 악단에 들어가는 게 인생의 전부라 생각했던 철없던 그 시간 내 곁을 묵묵히 지켜 준 건 은총이었다. 그 아이 앞에서는 울어도 창피하지 않았다.
시력을 잃어가며
어느 날부터 은총이는 문틀, 식탁, 의자에 자주 부딪히곤 했다. 익숙한 산책길에서는 자꾸만 대각선 방향으로 치우치며 가다가 나무에 부딪히고.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 병원에 데려가서야 알았다. 잘못된 사료로 인한 신부전증으로 점차 시력을 잃어간다는 걸.
함께 살던 아들 기쁨이는 급성 신부전증으로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조금씩 시력을 잃어가며 익숙했던 집안의 구획과 모서리들이 흐릿해져 가던 때, 시력을 잃어가는 눈은 초점을 잃고 이리저리 멋대로 굴러다녔다. 중앙에서 가장자리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던 은총이 눈을 기억한다. 그러나 나는 그때 은총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강산이가 작가에게 했던 것처럼 내가 은총이의 눈이 되어 줄 수는 없었을까 생각한다. 2000년대의 나에게는 그건 좀 어려운 일이었다. 하느님 앞에서도 이제 막 냉담을 풀고 걸음마 걷는 아기와 같았던 때였다. 그러니까 하느님도 모르고 사랑도 모르던 철부지였다.
돌봄과 사랑에 대하여
그때 난 예쁘고 멋진 슈나우저를 데리고 다니는 나 자신이 좋았다. 흔하지 않은 특별한 종이라는 과시와 허영심도 있었고. 슈나우저 전문 미용사를 찾아 멀리 차를 태워 가서 미용해 주고, 멋진 옷과 신발을 사 주고, 친구들에게 보여 주려고 여기저기 잘도 데리고 다녔다. 차에 타면 멀미하느라 고생했던 은총이가 안쓰러우면서도 그걸 사랑이라 우겼다. 사랑에 대해 잘 몰랐던, 어린 나.
시간이 흘러 결혼하고 아이 둘 낳고 키우며 알았다. ‘돌봄과 사랑’에 대해. 내가 돌본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반대였다는 걸. 내가 사랑을 주었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내가 받고 있었다는 것을. 육아하면서 종종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어르고 달래면서, ‘어, 이건 내가 은총이한테 했던 말투인데.’라거나. 씻기고 입히고, 눈을 맞추고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건 은총이와 먼저 해 본 거였네, 하는 식으로. 지금 우리 아이들이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가듯 20대 어린 나를 살피고 길러 준 은총이의 돌봄과 사랑을 이제야 생각하는 것이다.
마지막 인사
유학 중인 막냇동생을 만나러 중국에 가 있던 중에, 부모님을 통해 은총이 상태가 좋지 않다는 연락을 받았다. 일정이 아직 남아 걱정하며 잠든 그 밤, 꿈에 은총이가 찾아왔다. 아주 건강하고 명랑한 모습으로. 며칠이 지나 한국에 돌아와서 알았다. 바로 그날 하늘나라로 갔다는 것을. 부모님은 차마 이야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마지막 인사까지 빼먹지 않던 속 깊은 아이.
생각해 보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미리 겪은 아이였다. 출산과 육아도 먼저 했고, 지병으로 아픔도 많았고, 무엇보다 아들을 먼저 잃은 참척의 고통까지.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아픔을 겪은 그 마음을 20대인 내가 다 알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나이 오십이 가까이 되고 나서야 겨우, 그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이다.
사랑을 감각하는 법
내가 은총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성모님의 삶을, 외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 모른다고. 은총이가 외아들 기쁨이를 잃은 것을, 나는 두고두고 떠올렸으니까. 한없이 나만을 바라봐 주던 그 눈길은 사랑이었던 걸, 그렇게 나를 한없이 사랑으로 바라보는 분이 계심을 느낄 수 있었던 건 나의 고운 인연 덕분이었다고.
말 없는 존재와의 교감은 조금 더 특별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감각하는 일종의 예비 훈련 같은 것. 이별 후에도, 꿈에서 영적으로 다시 만나는 일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만질 수도 없지만 현존하시는 그분을 감각하도록 이끌어 주었다. 은총이는 내게 그것을 가르쳐준 첫 번째 동물 선생님.
이제 나는 식물 선생님, 바람 선생님, 책 선생님으로부터도 사랑을 감각하게 되었다. 말없이 다가와 내 마음을 헤아려 주고, 아픔을 함께 나누며 사랑으로 응답해 준 존재들로부터의 가르침. 그러므로 사랑하게 만들 모든 존재를 끌어안을 준비를 하고 있다. 두 팔을 벌려 내게 다가오는 존재들을 반가이 맞을 것이다. 나를 그분 사랑으로 연결해 주는 사랑의 메신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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