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특집③ ‘성경’으로 돌아오라는 초대

성경 이야기

월간 특집③ ‘성경’으로 돌아오라는 초대

성경이 참된 ‘마음의 평화’로 이끄는 이유

2026. 02.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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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한 마음은 우리를 주술과 운세로 향하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와 전혀 다른 길을 제시합니다.

 

오늘의 글은, 불안을 넘어 하느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우리를 어떻게 평화로 이끄는지

성경을 통해 짚어 줍니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의 신앙

차분히 성찰해 볼까요?

 


 

불안은 왜 우리를 점집으로 이끄는가?

 

몇 년 전에 친한 친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생 아들이 운동하고 있는데, 아이가 운동선수로 성공할 수 있을지, 앞으로 계속 운동을 시켜도 되는지를 점집에 가서 물어보려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천주교 신자가 점을 볼 생각을 하지?’라며 실망하기보다, ‘그 친구가 얼마나 불안하면 신부인 나에게 이런 이야기까지 꺼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친구에게 운동선수로서 성공할지보다는 운동선수로서 어떤 과정을 겪고 어떻게 성장해 갈지를 생각해 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듯 인간은 자신의 불안을 무언가에 의지하거나, 이미 결정된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다 안도감으로 불안을 덮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미래는 결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미래란 오늘이라는 시간과 연결되어 영향받기 때문에 예정된 시간이 아닌 불확정적인 시간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불확정적인 시간인 미래를 소유하려는 헛된 꿈속에서 불안을 없애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특히 홈쇼핑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래를 예단하는 말, 흔들리는 우리의 마음

 

홈쇼핑을 보다 보면 늘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마감 몇 분 전입니다.”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는 순간 물건을 사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갈등 속에서 불안해집니다. 그리고 이 불안은 결국 수화기를 들게 하고 결제로 이어지게 합니다. 이렇게 획득된 물건으로 사람들은 불안을 잠재우고 안정을 얻습니다.

 

우리가 점을 보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미래가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 이렇게 될 것입니다.”라는 점쟁이의 말은 설사 현실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미래를 알았다는 마음 안에서 불안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줍니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완화일 뿐, 불안 자체를 없애 주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시간을 만드시고 이끄시는 분은 오직 하느님이시고, 미래를 아시는 분 또한 하느님 한 분뿐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계명, 인간의 불안 앞에서 무너지다

 

그래서 신명기 1810-11절에서 점쟁이와 복술가, 요술가, 주술사 등 무속적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불안은 때로 하느님의 명령마저 어기도록 이끕니다.

 

사무엘기 상권 28장을 보면, 사울은 수넴에 진을 친 필리스티아인들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께 앞으로 어떻게 될지 여쭙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침묵하시자, 엔 도르에 있는 혼백을 불러올리는 여자를 찾아내 사무엘의 영을 불러올리도록 합니다. 이처럼 인간의 불안은 하느님의 계명까지도 무시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온전히 믿고 따른 사람, 아브라함

 

그러나 성경은 이와 반대인 신앙인의 모습 또한 보여 줍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히브 11,2)

 

이어서 아브라함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며, 아브라함이 믿음 안에서 자신의 불안을 극복했음을 알려 줍니다.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히브 11,8)

 

그런데 아브라함의 믿음은 단지 고향을 떠나라는 명령에서만 드러난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사악을 바쳤습니다.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이 외아들을 바치려고 하였습니다.”(히브 11,17)

 

이렇듯 아브라함은 자신의 외아들인 이사악을 믿음 안에서 바쳤습니다. 분명 아브라함은 외아들을 바치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따르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그 명령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는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안고 있었지만,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느님의 명령대로 이사악을 바쳤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는 이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까지 일으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히브 11,19)

 

결국 아브라함은 죽음과 생명까지도 다스리시는 하느님을 믿었고, 그분께서 다시 생명을 주실 것이라는 그 신뢰 속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미래를 알고 싶은 마음, 하느님을 신뢰하는 마음

 

불확실한 미래를 안다고 해서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과 죽음, 생명을 다스리시는 하느님을 믿고 신뢰할 때 비로소 우리는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러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해 줍니다.

 

한편, 인간은 인과율에 따라 원인과 결과를 밝혀내고 싶어 합니다.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는 귀납적 추론을 통해 민간요법이나 주술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고, 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부적과 오늘의 운세, 타로점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여러 가지 오류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정확한 원인 분석이 아닐 뿐만 아니라, 상관관계로 내린 결론인 논리적 오류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신의 돌봄을 느끼게 해 주는 것

 

베드로의 첫째 서간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의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맡기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1베드 5,7)

 

주술과 운세는 신의 돌봄을 느끼게 해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신을 강요하고 강제하려는 모습을 띠고 있기에 자기중심적 삶을 강화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고 획득하기 위한 자기중심적 삶이 아닙니다. 신앙이란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다른 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성숙한 삶입니다. 또한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주님께서 나를 돌보아 주시고 이끌어 주신다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섬김의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르 10,43)

 


 

진정한 행복의 삶, 성공 대신 섬김을 선택하다

 

결국 신앙이란 성공을 통해 다른 이들 위에 군림하는 삶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돌보아 주고 사랑을 베푸는 섬김의 삶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우리에게 섬김이 아닌 성공과 승리만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끊임없이 말합니다. 이와 같은 부추김은 하느님의 신비스러운 힘마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려는 세속적 삶으로 우리를 이끌 수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723항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의 삶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줍니다.

 

진정한 행복이 부나 안락에 있지 않고, 인간적인 영예나 권력에도 있지 않으며, 제아무리 유용해도 과학이나 기술, 예술 등 인간 업적에도 있지 않으며, 어떤 피조물 안에도 있지 않고 오로지 모든 선과 사랑의 근원이신 하느님께만 있다.”

 


 

성경, ‘사랑받는 존재임을 알려 주는 책

 

모든 선과 사랑의 근원이신 하느님의 말씀이 곧 성경입니다. 부와 권력을 얻고자 하는 마음만 앞선다면 헛된 주술과 운세에 운명을 맡기게 되겠지만, 사랑 안에서 안정과 평화를 누리고자 한다면 성경 읽기가 필수입니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사랑하시고 돌보아 주셨는지 알려 주며, 우리가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 드러냅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1요한 4,10)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세속적 처세술을 배우는 일이 아니라,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으며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인지를 깨닫는 일입니다. 더욱이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은 사랑으로 시작되고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하느님과의 애착으로 누리는 마음의 평화

 

우리가 하루하루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읽고 제자들의 편지와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고 느끼면서 삶의 안정과 행복감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한 세상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이겨 낼 용기와 희망도 얻게 됩니다.

 

아이와 부모의 애착 관계가 아이의 심리적 안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애착 관계가 잘 형성된 아이는 불안보다는 심리적 안정을 느끼며 낯선 환경에서도 잘 적응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인 역시 하느님과 어떤 애착 관계를 형성하느냐에 따라 불안한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성사 생활과 성경 읽기를 소홀히 여긴 채 하느님과의 애착 관계를 잘 형성하지 못한다면, 불안을 자극하는 세상 속에서 안정보다는 걱정과 근심을 느끼며 무속이나 주술에 의지하려고 할 것입니다.

 

반대로 충실한 신앙생활을 통해 하느님과 깊은 일치를 이루는 사람은, 세상 걱정보다 주님께서 나를 이끌어 주신다는 믿음으로 참된 마음의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참된 평화’, 성경과 함께 하다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싶다면 이제부터라도 성경 읽기를 시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성경 읽기는 하느님의 진정한 사랑이 드러난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신약 성경을 차근차근히 읽다 보면 하느님의 확실한 사랑이 마음에 자리 잡게 될 것이고, 구약 성경에 담긴 하느님의 사랑 또한 더욱 깊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허황한 무속이나 주술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받는 존재로, 사랑의 섭리로 이끌어 주는 성경을 가까이하면서 하느님께 비롯된 사랑 안에서 참된 평화를 누리기를 바랍니다.


 
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성서신학을 전공했고, 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 담당 신부로 활동 중입니다. "인간의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에페 3,19)라는 말씀을 늘 마음에 새기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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